write

멘토의 수업료

. 12 min read . Written by 봄을기억해

"제가 책임지고 키울 테니 뽑아주세요."

상사는 내 말에 꽤나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속으로 덩달아 놀랐다. 나도 내가 무슨 소릴 하나 싶었으니 말이다. 다른 말도 아니고 책임이라는 말을 꺼내다니. 회사에서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주제에 무슨 책임이란 말인가. 하지만 같이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가슴속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든 설득력 있게 말을 이어가야만 했다. 나는 발표를 처음 하던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반드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는 말수가 적고 의견을 잘 내지 않는 편이지만 이것저것 찔러보면 의외로 침착하게 대답 잘하더라고요. 신입답지 않게 프로그래밍에 대해 나름대로의 체계와 깊이를 가지고 있어요. B는 조금 덤벙대기는 하지만 열정이 충분하고, 발랄한 성격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면서 배우려는 의욕도 느껴졌던 게 다른 친구에게 뭔가 가르쳐주고 있으면 어느샌가 B가 옆에 와서 같이 듣고 있더라고요. 저는 지난 6개월 동안 이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충분한 잠재력을 봤다고 생각해요. 이대로 그냥 보내기에는 아까운 인재들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잘 안 풀리는 부분을 도와주던 모습이나, 교육을 하던 도중에 먼저 질문을 던져왔던 부분, 처음 입사 면접으로 발표할 때 돋보였던 부분, 프로젝트 도중 문제를 맞닥뜨리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성장했던 에피소드 등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덧붙였다. 마치 상사의 입에서 '그래도 이번 건은 말이지..', 'TO는 이미 충분해' 같은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상사의 머릿속에 욱여넣듯 계속 이야기를 해댔다. 그랬다. 어느덧 나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 내가 가르친 인턴들을 옹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신입사원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지원조차 해보기도 전에 떨어지지 않기를, 부푼 기대 대신 실망을 안고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의 멘토로서 최종 평가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기어이 책임이라는 단어마저 꺼내도록 만든 것이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가르칠 깜냥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으로 가득한 1~2년차 프로그래머였을 시절. 나의 자신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비전공자라는 절박함으로 꾸준히 스터디를 해왔던 것이 되려 탄탄한 기본기를 만들었고, 회사에서 제시하는 미션을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근성 덕분에 경험치를 많이 쌓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흔히 말하는 '소방수' 포지션으로 고객사에 해결이 안 되는 긴급한 장애가 생기면 불 끄러 가는 것이 내 역할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그 일을 해결해내곤 했다. 2년차를 채우고 이직을 한 회사에서는 놀랍게도 이직 3개월 만에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시켜주었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건 회사가 내 실력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고객사에 좀 더 신뢰가 가는 직급의 인원으로 업무를 처리해주기 위함이 더 컸을 것이다.) 그렇게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고 믿는 3년차가 되었을 때, 나의 첫 부사수 C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C는 나와 같은 학원 출신 비전공자였다. 그는 특유의 쾌활하고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의욕을 앞세우던 친구였다. 재기 발랄하고 반짝임으로 가득한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프로그래밍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다. 6개월의 프로그래밍 입문 교육을 받고 입사한 것이라면 응당 알아야 할 부분을 C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상황이 그랬으니 내가 섰던 출발선에 비해 부사수 C의 시작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을 것이다. 같이 일을 해나갈 때마다 아쉬운 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것이 보일 때마다 세세하게 피드백을 했다.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던 게 아닐까. C는 세심하게 디테일을 챙기는데 익숙하지 않은 신입이었고, 성격 자체도 꼼꼼하다기보다는 자유분방한 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처음 몇 번은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반복되는 실수를 연달아하는데서 내 어조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C는 처음에 비하면 분명 점점 나아지고 있었지만, 실무에서 요구하는 기준에는 부족함이 늘 드러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걸 척척 해낸다면 그게 어디 신입이겠는가? 내가 바랬던 목표치가 신입인 그의 입장에서는 아득해 보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조종 패널들 앞에 앉아 그 모든 조작을 하나의 실수 없이 온전히 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신입의 기준에 맞춰 그를 점점 몰아세웠다. 여섯 달쯤 지나 그가 다섯 번째로 어떤 실수를 반복했던 날, 나는 그를 회의실로 따로 불러냈다. 급기야 날카롭게 벼려진 말들이 C를 향해 날아갔다. 차라리 욕을 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C에게 개발자의 길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그간의 상황들을 근거로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그것은 C에 대해 그동안 쌓아왔던 개인적인 '친분'이나 '믿음', '잠재력', '기대감', '응원' 같은 것은 포함하지 않은 철저하게 무감정하고 기계적인 문장들로 점철된 것이었다. 오로지 '과거'와 '결과'로만 그를 재단하고 짓밟는 폭력의 언어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마구마구 말을 쏟아붓듯 이어갔다.

긴 시간 이야기를 들은 C의 얼굴에는 거대한 망치로 때려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서려있었다. 잠시 후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제가 공부가 부족했나 봐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곤 도망치듯 회의실을 떠나갔다. 그것이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C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던 까닭은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나와 그가 하는 프로젝트가 각각 나뉘었고, 프로젝트를 마치는 시점에 맞춰 두 번째 이직을 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몇 달이 흘러 새 회사에 적응해갈 무렵, C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C의 소식을 전해온 전 직장 상사의 안타까움 가득한 어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C를 어떻게든 회유해보려고 했는데 말이지. 너무 주눅 들어 있었어. C의 문제가 뭔지 알아? 그건 자신이 잘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거야. 더 해볼 의지가 남아있지 않더라."

그때쯤 나는 그동안 내가 주변에 해온 말들에 대해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조언'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치고 들어간 예리한 말들.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을지언정 상대를 위하는 배려나 따스함을 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호의가 아니라 난도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한 번 꺾여버린 마음은 쉽게 되살아나지 않으며,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던 것일까. 나는 왜,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했을까. 그들은 내가 아닌데도. 인생의 정답은 하나가 아닌데도.


그렇게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멘토의 자격을 얻은 느낌이다.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연구소에서 나를 거쳐간 신입/인턴들은 이제 얼추 열다섯 명 정도가 된다. 한 명을 3개월간 도맡아 가르친 적도 있었고, 많게는 여덟 명을 6개월 간 가르친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두 명을 빼면 모두 연구소로 입사했다. 그들이 첫 회사로 이곳을 택하는 것에 내가 조금쯤은 기여했을까? 그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지만 그들에게 내 진심이 어떤 형태로 가닿았을지는 알기 어려운 법이다. C를 그렇게 떠나보낸 이후로 깨달은 게 있다면, 나의 속도에 그들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것을 가르치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지도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각자가 이해해나가는 분량이 다를 수 있음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 특성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들과 발걸음을 맞추는 일이 마냥 어려운 것만은 아님을 이제는 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가르치면서 배운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내 안의 지식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없기에 지식을 갈무리하는 측면에서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여러 각도로 가르침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그중에서 손꼽아 보라고 한다면 개개인이 가진 가진 장점을 찾아내는 쪽으로 나의 시선이 향하게 된 점과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내 모습을 알게 된 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나는 내가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이 비즈니스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왔는데 이제 보니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도 없구나 싶을 만큼, 그들에게 마음이 기울어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진로가 교육의 길로 나아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볼만큼 그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될 줄이야. 그들이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그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끝으로 이 글을 C에게 바치고 싶다. C, 부족했던 사수라서 미안해. 서투르고 예민했던 나는 이제 조금은 달라졌어. 이따금 네가 종종 생각날 거야. 앞으로 만나는 친구들에게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