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망설였습니다. 퇴근길에 카페에 들러 글을 쓰고 갈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곧장 돌아갈 것인가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망설임. 그리고 뻔히 속을 것을 알면서도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 있습니다. 은근하게 나 자신을 타이르는 느낌으로요. 일단 1시간만 해보자.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1시간 후에는 집으로 가는 거야. 지금은 퇴근길도 북적이잖아. 안 그래? 지금 가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구.
의외로 이 주문은 꽤 효과가 있습니다. 어쩌면 카페에서 주문하는 콜드 브루와 샌드위치로 허기짐을 달래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육체의 허기가 곧 정신의 허기이기도 하니까요. 한껏 늘어진 정신에 새롭게 활력을 채워주는 느낌인 거죠. 그런 사이에 다른 이들이 카페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러 여기에 온 것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맞아요, 바로 그런 순간들이 저를 흰 여백 앞으로 데려가곤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여백 속에 글감을 주섬주섬 꺼내들 용기가 생기는 건 바로 그 때에요. 마치 글쓰기를 위해 예열 시간이 필요한 느낌이 들죠.
그렇게 여백 속에 타이핑을 시작합니다. 글감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들을 덩어리 덩어리 늘어놓는 느낌으로요. 그렇게 모인 단어 뭉치들이 문장이 되기도 하고, 되다 말기도 하고, 결국은 지워지기도 합니다. 도떼기 시장의 분위기가 바로 이런 느낌일까요? 정신없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있는 문장들을 두고 하는 말이에요. 아직은 저마다 자기들 목소리를 내기 바쁘고, 각자 하고 싶은 얘기가 다르기도 하거든요. 바로 그럴 때 흐트러진 문장들을 한데 모아 이야깃감으로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일일 겁니다. 씨줄과 날줄을 엮듯 문장들의 줄을 세우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게 하면 그제서야 제법 그럴듯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네가 글이 되려는구나, 글로 태어나려 하는구나' 싶지요. 그렇게 글을 쓰고, 리듬도 부여하고, 살도 붙이고, 때로는 과감하게 분량을 덜어 내다 보면 어느덧 1시간은 훌쩍 지나있게 마련입니다. 또 속았냐는 생각보다는 글을 써낸 뿌듯함으로 대체되는 순간이기도 한데요. 이것이 망설임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의 글을 만나게 되는 사건(?)의 전말입니다. 오늘도 멋지게 속아 넘어간 내 자신 칭찬해.
가끔씩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합니다. 얼마 전 글을 왜 쓰려고 하는지 이유를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서 다시금 왜 쓰는가를 생각해보기도 했었는데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그저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그 경험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고, 거기에 대해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거나 재해석하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게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이 덧붙여질 때 비로소 내가 했던 경험을 그저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래서 제가 글과 사진으로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고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글쓰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그래서 요즘 또 생각하는 주문(?)은 "오늘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 글을 만나기 위해서야"라는 말입니다. 저는 글감을 찾고 글을 짓는 일이 광맥을 찾거나 지하수를 탐사하는 일과 비슷한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진작에 석유나 석탄이 고갈될 거라는 말이 많았지만, 석유를 탐사하고 시추하는 기술이 늘어나면서 예상했던 매장량도 늘어났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런 느낌인 거예요. 그러니 글 쓰는 재능이 부족하다거나 고갈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새로운 글감들을 더 세심하게 잘 발견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해보는 거지요. 그렇게 오늘도 다음 글을 만나기가 좀 더 수월할 거라는 기대를 담아 글을 써봅니다.